장린샤

중국 귀주 출신으로, 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상하이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롭고 고단한 객지생활을 위로해준 친구는 음식이었다는데요, 그래서 귀주의 음식과 상하이의 음식에 특히 자신있다고 말합니다. 북경, 사천, 광동 등 중국 각지의 대표 요리도 많이 연구해봤대요. 

가능한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중국의 지역 음식을 하나하나 소개할게요”

장린샤

 

 

장린샤 씨의 요리 선생은 거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는 외식으로, 그리고 인터넷으로 요리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밖에서 뭔가를 먹으면 무엇을 써야 이런 맛이 나는지를 본능적으로 떠올렸다고 하는데요, 그럴 때면 집에 돌아와 바로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성공한 날도 있었지만 실패한 날도 많았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끔은 실패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 맛을 교정해준 선생님은 인터넷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스스로 연구해 이제는 베이징, 상하이, 쓰촨, 광둥으로 대표되는 중국 4대 지역의 대표 요리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치우고 있습니다.

 

그녀 요리의 또 다른 강점은 지역성입니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상하이에서 보냈지만 그녀는 귀주에서 나고 아홉 살까지 자랐는데요, 거기서 먹어왔던 음식을 이따금씩 원파인디너의 식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녀가 선보인 귀주식 훠거 쑤안탕위(酸汤鱼)는 어느 중국 음식점에서도 경험한 적 없는 강렬한 색과 맛이 특징입니다. 거대한 생선 한 마리를 띄운 새빨간 빛깔의 탕으로, 며칠을 삭혀 만든 소스 덕에 시큼한 맛이 혀를 자극합니다. 그렇게 그녀와 교감하면서 원파인디너는 중국 음식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편 매번 그녀의 조리과정을 지켜보고 음식의 맛을 느낄 때마다 놀라고 있습니다. 언제나 미소가 끊이지 않는 해맑고 아름다운 여성이 음식을 시작할 때면 엄청 과감해지거든요. 펄떡거리는 팔뚝 만한 민물고기를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다듬기도 하고, 불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직화로 야채를 굽고 맨손으로 껍질을 벗겨내기도 합니다.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다채로운 기술로 풍성한 맛을 내는 걸 보면, 고수란 사실 먼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 장린샤의 상하이 만찬

 

 

 

 

 

 

일단 고향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귀주 출신이라 하셨죠? 이름은 익숙하지만 사실 정보가 많지 않은 지역이예요.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귀주는 생활 수준이 많이 낮은 동네예요. 하지만 모든 삶이 그런 것처럼 곰곰이 들여다보면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발전이 늦은 지역이긴 했어요. 제가 어릴 적엔 상하이까지 가는 데 2박 3일이 걸렸거든요. 지금은 고속전철이 들어와 12-24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요. 그런 귀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아홉 살에 상하이로 갔어요. 친척이 많이 살고 있었거든요. 공부 때문에 갔어요.

 

 

그런 귀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소녀 시절의 꿈도 궁금하고요.

막 학교 들어가서는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죠. 제 아들이 열 살인데요, 그 시절의 나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웃음). 일곱 살 무렵 무용반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때부터 웃을 일도 많아지고 성격도 밝아진 것 같아요. 몸도 건강해졌고요.

저는 묘족의 전통 무용을 배웠어요. 묘족은 중국의 수많은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고, 저도 묘족이예요. 그렇게 배운 무용을 중고교 시절을 거쳐 대학교 다닐 때까지 계속 했어요. 공연도 많이 했고요. 저녁을 많이 먹은 날엔 꼭 밤에 연습을 한 번 더 하고 잤어요. 한때는 무용수를 꿈꿨지만 키도 안 크고 목도 짧아서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어요(웃음). 한계를 깨닫고 나서도 취미로 학창시절 내내 즐겨왔어요.

그러다 몇 해 전에 한국에 왔는데요, 다시 춤을 출 일이 생겼어요. 다문화 센터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거기서 전통무용 수업을 제안받았거든요. 아이한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몇 번 진행해봤어요. 수업을 계기로 친구들도 많이 만나게 됐고, 그러면서 원파인디너와 일도 같이 하게 됐네요. 춤도 음식도 결국 교육으로 연결되는데요, 직업의 세계는 다양한데 아이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꿈꿀 수 있도록 엄마가 먼저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훌륭한 교육 방식이네요. 가족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요. 중국은 대체로 가정에서부터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라고 들어왔는데요, 장린샤 씨의 부모 세대 또한 그런 세월을 보냈는지 궁금하네요.

그건 요즘 얘기예요. 젊은 세대들은 남녀가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죠. 하지만 제 부모님 세대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하고 그랬죠. 아버지는 늘 일하느라 바빴어요. 관료였던 할아버지가 일찍 퇴직하면서 아버지는 평생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살아왔어요. 장남이었거든요.

외가쪽도 마찬가지로 고단한 바깥일은 다 남자들의 몫이었어요. 외할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하셨거든요. 어릴 적부터 술을 먹어두면 커서도 잘 먹는다고 어린 저한테 집안의 어른들이 숟가락으로 조금씩 술을 먹이던 게 생각나네요(웃음). 엄마와 여동생이 사업을 이어받아 공장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귀주의 전통술을 만들고 있어요. 엄마의 고향이 전통주 제조로 유명한 지역인데요, 그래서 그랬는지 외삼촌도 소주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남녀평등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계속 술 이야기만 하게 되네요(웃음).

 

 

이젠 청년 시절로 넘어 올게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 교사로 일했다고 들었는데요, 그 시절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대학 시절 유아교육과 중국문학을 공부했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유치원으로 갔고, 거기서 역사, 지리, 중국어 같은 과목을 가르쳤어요. 학원에도 있었고 외국계 기업 산하의 어린이집에도 있었어요. 급여 때문에 몇 번 옮겨다녔어요. 나중에는 유치원을 열어 원장이 됐어요. 그 시절에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해 또래들에 비해 경력의 정점까지 빠른 길로 갔는데 사실 별로 돌이켜보고 싶지 않아요. 사업이라는 건 사실 엄청 고생스러운 일이니까요.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 고된 시절이 지나간 뒤에 저는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한국으로 왔어요. 성공과 성취에 대한 생각은 이제 다 사라졌어요. 중국으로 돌아가 사는 삶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고요. 지금이 좋아요. 오늘은 뭘 만들고 내일은 뭘 해야 즐거울지를 고민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요새는 아이랑 새로운 목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엄마가 동대문에 작은 포장마차를 하나 열어 중국 음식을 하면 사람들이 올까? 너무 크게 했다가 망하면 힘들어지니까 작게 시작해 볼까? 큰 욕심 없이 꿈에 대한 평범한 대화를 나눌 때가 가장 즐거워요.

 

 

아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음식도 어쩐지 가족과 나누는 교감을 통해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맞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요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특히 요새는 식구들이랑 같이 먹방과 쿡방을 많이 보고 있어요. 특히 맛집이 나올 때마다 설레요. 요새는 사먹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웃음). 가끔은 아이 입맛을 따라 한국 음식도 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니 어린 날 처음 주방에서 소란을 피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처음 만든 건 사실 요리가 아니었어요. 엄마가 국수를 준비할 때 면을 삶아본 게 시작이었는데요, 그게 꽤 즐거웠던 것 같아요. 엄마나 이모의 음식이 맛있을 때면 꼭 방법을 물어보곤 했고요. 

성장하면서 해먹는 경우보다 사먹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밖에서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언제나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지를 궁금해 하고 집에서 방법을 추리하고 상상하면서 만들어보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성공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인터넷으로 레시피 많이 찾아보고 계속해서 만들어보면서 점점 발전했고요. 그렇게 연습해온 덕분에 귀주와 상하이 음식은 물론 베이징과 쓰촨성 등 중국의 유명한 지역 음식을 이제는 어느 정도 다 만들 수 있어요.

 

 

 

 

 

▲ 장린샤의 쑤안탕위

 

 

 

 

▲ 장린샤의 시친차오샤런

 

 

 

 

▲ 장린샤의 홍샤오우화로우​

 

 

 

 

귀주와 상하이를 두루 경험한 셈인데요, 두 지역의 음식문화도 분명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귀주 음식은 좀 더 토속적인 구석이 있어요. 맵고 얼얼한 맛이 나는 음식이 많아요. 반대로 상하이의 음식은 좀 심심한 편이예요. 맵지 않고 담백한 맛이 잘 살아 있어요. 귀주 음식에 혀가 길들여진 사람들은 싱겁다고 생각하는 맛이죠.

어른들 대부분은 지역의 전통적인 요리를 선호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달라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요리를 접하고 있으니까요. 어딜가나 한국 음식점과 일본 음식점이 많아요. 한국 드라마 영향이겠죠. 그런데 이상하게 중국에선 다른 나라와 다르게 인도 음식이 인기가 없어요. 커리 특유의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전까지 장린샤 씨에게 중국 음식은 생활이었지만, 다양한 호스팅 경험을 쌓고 있는 지금은 중국 음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지역마다 음식의 특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많이 쓰는 식재료가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단 향신료와 허브, 다양한 약재를 많이 써요. 그리고 기름, 간장, 소금을 많이 써요. 많이 써야 맛이 나거든요. 그간 쿠킹클래스를 통해 홍샤오우화로우(红烧五花肉. 중국식 삼겹살 조림)를 몇 번 준비했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일단 꽤 놀라면서 배우기 시작해요. 기름과 설탕이 엄청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먹고 나면 반응이 달라져요. 그렇게 써야 맛이 나거든요.

그렇게 중국 음식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소개할 일이 많아지면서 중국 음식의 특징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어요. 조리법이 까다로운 음식도 많아요. 며칠을 삭혀 만드는 소스로 생선탕을 끓이기도 하죠. 외국 사람은 못 먹는 매운 음식도 많고요. 하지만 반대로 굉장히 간단한 조리 과정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도 많아요. 인구가 많은 만큼 음식의 종류가 워낙 많아 선택의 폭이 넓은 데다 퓨전의 여지와 가능성도 많죠. 그러니까 누구나 받아들이기 쉽고요. 아마도 그래서 중국 음식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싶어지네요.

 

 

새로운 환경에서 즐거운 경험도 많이 하고 있지만, 가끔은 고향음식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아플 때 떠오르는 음식이 있나요?

어릴 적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홍샤우투또우(红烧土豆)가 정말 먹고 싶었어요. 중국식 감자조림인데요, 그때 이후로 아프면 그게 늘 생각났어요. 지금은 삶이 많이 변해 제가 아프면 음식 생각할 겨를 없이 아이부터 걱정하지만요.

며칠 전에 황진단쥐엔(黄金蛋卷)을 만들어봤어요. 노란빛이 나는 중국식 만두인데요, 춘절에 엄마가 만들어주곤 했어요. 매년 먹진 못했어요. 고기와 계란이 많이 쓰이니 형편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빼는 음식이었거든요. 계란으로 황금색으로 피를 만드는 게 핵심인데, 재물운을 상징해요. 중국은 만두가 정말 많아요. 지역에 따라 쓰이는 식재료와 만드는 방법도 다르죠. 북방 사람들은 만두를 만들 때 밀가루를 많이 쓰고, 남방 사람들은 쌀을 더 많이 써요.

만두 얘기하다보니 얼마 전에 빚은 샤오마이(烧卖)가 떠오르네요. 중국에선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었는데 원파인디너와 함께 일하면서 연구하게 됐죠. 찹쌀만두피에 찹쌀밥을 넣어 찌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요, 처음엔 실패했지만 다시 했을 땐 제대로 나왔어요. 찹쌀만 쓰면 너무 끈적거려서 소를 만들기가 어려운데 멥쌀을 20% 가량 넣어 다시 쪄봤더니 훨씬 괜찮아졌어요.

 

 

음식을 만든다는 건 결국 수많은 실패와 씨름하는 일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긴장하게 되면 맛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요. 원파인디너와 함께 식탁을 만들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나요?

사실 많이 실패하고 있어요. 지금도 계속 실패해요. 조금 더 맛있어야 할 것 같은데 늘 약간씩 모자란다고 느끼는 때도 많고요. 하지만 즐거운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요새는 기분 좋은 확신을 얻고 있어요. 실수가 있을 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고, 맛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맛이 없지는 않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패가 쌓인 끝에 실전에서 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 장린샤

 

 

  

장린샤 호스트의 디너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