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찌 히데꼬

고베 출신으로, 한국의 한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주여성 공동체 '미래 길'의 공동 대표이자 몇 해 전 등단해 한국어로 틈틈이 시를 쓰고 있는 문인입니다. 그녀는 국내 일본 음식점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일본 음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능한 언어 : 한국어, 일본어

“나누고 싶은 일본 음식 진짜 많아요”

아마구찌 히데꼬

 

 

고베 출신의 야마구치 히데꼬 씨는 시어머니, 남편과 아들 둘과 함께 살면서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의 공동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일정이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식당을 열거나 하는 미래를 꿈꾸진 않습니다. 음식에 관한 확실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음식을 나눌 길은 많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는 국내 일본 음식점의 메뉴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내 일본 음식점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메뉴에 관심이 많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드물고 특별한 일본 음식을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실력이 놀랍습니다.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해지네요. 

결혼하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마음이 급했어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이 함께 살았거든요. 그래서 일본 요리는 엄두도 못 냈어요. 식구들이 많아서 뭐든 빨리 배워서 익혀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한국어를 전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어에 한자가 쓰이니까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런 유창한 언어실력으로 문학 활동도 한다고 들었어요.

희곡가 박공서 씨가 쓴 대본집 <사랑의 혁명>을 번역했어요. 1996년 나온 책이라 지금 서점에 있을까 잘 모르겠네요. 책은 세계평화, 남북통일, 순수한 사랑, 인류애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요, 중간중간 재미있는 사투리가 나와요. 저는 효오고현 출신이라 그걸 강서지방 사투리로 옮겨봤어요. 시집도 몇 권 번역했어요. 등단도 했고요. 2002년부터 한국어로 시를 쓰기 시작해 2009년에 <한국문학예술>지를 통해 신인상을 탔어요. 저는 한국어능력시험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고 지금까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문학 번역은 일반 번역과 비교해 훨씬 어려워요. 시 번역은 한 단어 한 단어 고민하면서 양쪽 문화를 생각하고 맞춰야 해요. 이미 훌륭한 작품을 다른 나라의 문화에 맞춰 재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이 따르는 일이죠.

 

 

일본에서 보낸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도쿄에 있는 한 대학 예술학부에서 영화극본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그냥 일반 회사에 들어갔는데요, 대학 친구가 35mm카메라로 영화를 제작한다면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두 편을 같이 했는데요, 저는 조감독을 맡아 장소를 섭외하고 소품을 준비하는 일을 했어요. 쥐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서 실험용 쥐를 네 마리 빌려오기도 하고, 양초로 만든 아기 인형이 필요하다기에 업체에 전화해서 찾아내고 그랬죠. 문예학과 학생이 찍어서 그랬는지 절학적이고 예술적인 어려운 영화였는데,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았지만 작업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 활약했어요. 그러다가 미술을 공부해서 영화 미술팀에 들어가려 했는데 그걸 이루기 직전에 한국에 오게 됐고요.

 

 

한국에 온지 꽤 됐다고 들었는데, 그때랑 비교해 이제는 한국에서 외국인 만나기가 어렵지 않죠?

1980년대 후반 한국에 왔어요. 그때는 결혼이민자가 적어서 지역마다 외국인에 대한 행정적인 대우가 다 달랐어요. 2007년에 법무부가 이혼율이 높은 국제결혼을 걱정해 출입국 관리사무소 주관으로 결혼이민자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요, 저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출입국 결혼이민자 네트워크 회장을 했어요. 그때부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주여성을 만나 많은 걸 배웠고 일도 많이 했어요. 이명박 정부 시절 200명 앞에서 다문화 대표로 정책 제안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는 동안 다문화 단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저는 2009년부터 <다문화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지구촌 이웃'이라는 코너를 기획했어요. 결혼이민자 약 40명을 만나 한국 생활과 모국 문화를 취재하고 기사화했는데요, 덕분에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이주여성단체 ‘미래 길’의 대표로 활동도 하고 계시고요. 다양한 이주여성을 만나 함께 일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깨닫고 있을 것 같네요.

활동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몽골과 베트남에선 밥상 앞에서 "잘 먹겠습니다" 같은 인사를 안 한대요. 일본 사람들은 혼자 먹어도 밥상 앞에서 손을 모아 인사를 하거든요. 사람은 근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살아온 배경에 따라 상식과 문화가 다르니까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런 문제로 처음엔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결혼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남편 친구랑 후배 열 명 정도랑 같이 식당에 갔는데, 남편이 나이가 가장 많다며 다 계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 그렇게 돈 많나, 앞으로도 다 내야 하나 싶어 엄청 걱정스러웠어요.

 

 

한국과 일본 음식의 문화 차이를 실감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처음 먹었던 때가 생각나네요. 무가 맛있어 보이길래 아저씨에게 달라고 했더니 파는 음식이 아니라 국물 내는 데 쓰는 거라면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일본에서 오뎅은 어묵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일본에서 오뎅이란 국물에 어묵, 감자, 무, 유부 주머니, 곤약, 심지어 고래 연골 같은 게 담겨있는 음식을 뜻하거든요. 한국은 순수하게 한국적인 것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례로 시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왔길래 일본 음식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당시에는 없었던 젤리를 디저트로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처음 보는 음식이라 그랬는지 구경만 하고 맛도 안보더라고요. 많이 속상했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식구들한테 일본음식을 만들어주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일본은 다른 나라의 음식을 소화하고 해석해서 자국화하는 게 빠른데, 한국은 그렇지 않으니까 많이 답답했죠. 일본 카레가 유명한데 카레는 인도 음식이고, 돈까스도 유명한데 본고장은 프랑스거든요.

 

 

식재료 문화도 많이 다르죠?

집에서 돈까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일본에서 만드는 방식으로 고기를 갈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치킨볼도 못 만들었어요. 닭고기를 갈아서 햄버거 패티처럼 만들어 먹는 건데, 역시 닭고기를 갈아주는 정육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인스턴트 음식 코너에서 구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많이 변했죠. 규동이나 미소라면 같은 일본 음식을 파는 음식점을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니까 용기를 얻어서 집에서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해요.

 

 

한국 음식에도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네요.

시어머니는 집에서 간장, 고추장, 된장을 집에서 직접 만드셨어요. 전라도 출신이라 음식 솜씨가 좋아요. 함께 요리를 하지 않아도 시어머니께서 음식을 다루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돼요. 지금은 시어머니 대신 다문화센터나 인터넷을 통해서 꾸준히 배우고 있어요. 반대로 제가 다문화센터에서 서양 요리하는 방법을 배워오면 시어머니와 함께 만들기도 하는데, 남편보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서양 요리에 적극적이라 스튜 같은 음식을 해드리면 많이 좋아하세요.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루에 감자, 브로콜리, 당근 같은 것을 넣어서 만드는 화이트 스튜를 특히 좋아해요.

 

 

직접 집에서 차리는 밥상이 궁금하네요. 평소 가족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고 나누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집에서는 동태찌개, 닭볶음탕, 김치찌개, 잡채 같은 음식을 주로 먹고요, 아이들이 닭을 좋아해서 치킨까스를 자주 해줘요. 일본에서는 튀김과 프라이가 다른데, 빵가루를 입힌 것은 프라이, 빵가루 없이 촉촉한 반죽을 입힌 것은 튀김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돈까스 종류는 프라이가 맞아요. 타키코미고한을 남편이 정말 좋아해요. 채소, 우엉, 닭고기 등을 넣고 쪄서 만든 밥이예요.

 

 

반대로 일본의 일반적인 식문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고베 출신인데요, 오사카랑 가까워요.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로 유명한 지역이죠. 일본은 매일 된장국을 먹어요. 미소 된장을 넣은 국물에 미역, 가지, 버섯, 돼지고기 등을 넣어 만드는 간단한 요리로, 된장의 맛과 함께 재료 본연의 맛이 다 살아 있어요. 산후 조리용 음식으로도 먹기도 해요. 스시, 전골, 낫토, 생선조림도 많이 먹죠. 고등어를 얇게 썰어서 식초에 절이는 시메사바, 된장에 절이는 스케모노도 일본에서 자주 보는 음식이고요, 젓갈도 종류가 많아요. 일본인들은 절인 음식을 많이 즐겨 먹어요. 일본은 서양 문화를 일찍 받아들여서 정착이 잘 됐는데, 특히나 도쿄에 가면 제대로 된 세계 요리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저는 러시아 요리를 좋아했어요. 아버지 취향을 따라서 마파두부 같은 중국 요리를 많이 먹기도 했고요.

 

 

일본의 식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데요, 그렇다면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만드는 문화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일본에서는 좀처럼 집에 사람을 초대하지 않아요. 집은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식을 대접할 일이 생기면 주로 바깥에서 먹어요. 아주 간혹 손님이 오면 특대 사이즈로 스시를 시켜먹고 집에서는 미소된장국 정도만 해요. 음식을 한다고 해도 한국처럼 여러 가지를 하루 종일 하는 게 아니라 햄버거 스테이크 같은 1인 음식 위주로 간단하게 해요. 어릴 때 집에서 생일파티 하려고 친구들을 초대하면 새우 후라이 같은 후라이 위주로 엄마가 해주기도 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한국은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음식 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일본은 제사나 장례식, 결혼식 등 잔치가 있을 때면 고급 도시락을 업체에 주문해요. 음식을 나눠먹는 문화가 없으니까 명절도 마찬가지고요. 말하다 보니 자꾸 두 나라를 비교하게 되네요.

 

 

야마구치 선생님의 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하고 있나요?

부모님이 맞벌이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 동안 열심히 해서 요리하고 15분 만에 금방 먹으니까 참 허탈한 기분이 들었죠. 설거지만 쌓여있고. 그래도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셔서 재미있었고, 또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일찍부터 요리를 좋아하셨다면 요리사를 꿈꾼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자격증을 취득해서 식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요리 자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일종의 취미생활 같은 거죠. 나이가 더 들어도 계속 하면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요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마음을 열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나이가 더 들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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