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했고, 이전까지 일식 레스토랑에서 긴 이력을 쌓아왔습니다.​그러다 새로운 음식을 만나 전과 다른 식탁을 연출하고 있는데요, 홍대에 '시내'라는 음식점을 열어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남미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이따금씩 음식과 관련한 컨설턴트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가능한 언어 : 한국어

 

“제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이재규

 

 

 

 

식재료를 잔뜩 들고 사무실을 찾아왔던 날, 이재규 셰프의 손에는 문어 한 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직접 수산시장에 찾아가서 사온 문어라 했습니다. “식재료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음식 맛도 달라지니까 그냥 제가 아는 곳에서 사와야 마음이 편해요.” 직접 발로 뛰어 얻은 식재료로 바쁘게 혼자 일하는 이재규 셰프는 홍대에 ‘시내’라는 음식점을 열어 스페인과 남미 음식을 소개한지 2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다양한 향신료와 올리브오일로 가득찬 식탁을 만들기 전까지 일식에 오래 집중해왔는데요, 어떻게 요리를 만나 변화를 경험했는지를 물었습니다. 

 

 

 

 

 


 △ 이재규 셰프의 식탁





일찍 요리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계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외가쪽에 음식을 하는 친척이 많아요. 외삼촌의 둘째딸은 포항에서 큰 빵집을 해요. 사촌형은 4개국어를 해요. 호텔에서 셰프로 일하면서 영어, 중국, 일본어를 하게 됐대요. 사촌형 덕분에 요리를 시작했어요. 약 15년 전의 일인데, 스무 살 무렵 형이 일하는 호텔에 놀러 갔다가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넥타이를 매고 옷을 갖춰입고 흰색 모자를 쓰고 일하는 형이 굉장히 멋져 보였고, 그런 복장을 하고 만들어준 스시와 튀김도 엄청 맛있었거든요. 형처럼 일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더니 일단 학교에 가라 했어요. 건축디자인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형의 말을 듣고 자퇴한 뒤 바로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갔어요.

 

 

 

 

학교 생활 이야기 들어볼까요. 무엇이 가장 어려웠고 무엇이 가장 즐거웠는지를요.

필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영양학 같은 복잡한 이론들을 다 외워야 했으니까요. 실기는 재미도 있었고 꽤 성적도 꽤 잘 나왔어요. 일식과 중식과 양식 그리고 제빵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부딪히는 걸 좋아했어요. 학교 대표로 국제경연대회에 나가 일식 부문에서 3등했던 적도 있어요. 사흘 밤을 새워서 준비했는데, 그런데 뭘 만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어쨌든 일식에 이끌렸어요.

 

 

 

 

일식도 분야가 다양하죠. 어떤 영역에서 가장 큰 흥미를 느꼈나요?

처음에는 사시미 뜨는 게 가장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오래 못 갔어요. 일식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데, 손이 부어요. 전복, 멍게, 해삼, 그리고 생선에 이르기까지 해산물을 많이 만지다 보면 너무 바빠서 손을 빨리 씻지 못하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볶음과 튀김류에 재미를 붙였어요. 처음엔 볶음요리를 하면서 요란하게 프라이팬 돌리는 게 신났죠. 하다 보니까 불의 세기에 따라서, 또 아주 미묘한 재료의 차이로 맛이 달라지니까 더 재미가 붙었고요. 튀김의 경우는 꽤 손이 많이 가요. 반죽의 농도도 잘 살펴야 하고, 온도를 조절하면서 두 번 튀겨야 빠삭해져요. 처음엔 175도로, 나중엔 180도로요. 마지막으로 꽃을 입혀요. 쇼켄가루를 써서 살을 입히는 것이죠. 하루 종일 온 몸이 기름에 절어 있었는데도 그게 싫지 않았어요.

 

 

 

 

졸업한 뒤에는 현장으로 나갔겠죠? 첫 직장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학교 다닐 때부터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건 한계가 있어요. 생선은 비싼 식재료라 마음껏 연습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수업 끝나면 일식당으로 갔죠. 그리고 졸업한 뒤에는 바로 서울로 올라와 호텔에 취직했는데, 못 버티고 금방 그만뒀어요. 6개월만에 나왔으니 욕을 엄청 먹었죠. 좋은 옷 갖춰입고 일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큰 고민 없이 들어갔지만 막상 갔더니 똑같은 일만 시켰어요. 반복만 하니까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죠. 다음에 시작한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한남동의 참치집이었는데, 다듬어야 할 식재료가 너무 많았죠. 

 

 

 

 

대략 2000년대 중반일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일식이 지금만큼 대중화되진 않았을 텐데요. 게다가 일본인들과 일했다면 많은 걸 배웠을 것 같네요.

일본어를 못하면 소통이 안 되니까 일단 일본어를 많이 배우게 됐어요. 6개월 가량 저한테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인을 많이 무시했거든요. 일도 많이 배웠어요. 홀 근처에서는 스시나 사시미 같은 차가운 요리를 해요. 그리고 뒷주방에서는 뜨거운 요리를 해요. 코스요리에 나오는 스끼다시를 만드는 것이죠. 게도 찌고 참치 머리도 굽고,  생선도 손질하고 그랬죠. 튀김기도 디시워셔도 없던 곳이라 젓가락 넣어서 온도 확인하고 튀기고, 설거지도 다 했어요. 원래 여덟 시 출근인데 손이 느려서 여섯시에 출근하고 열두 시에 마감했어요. 그냥 거기서 잤어요. 생선 뜨다가 손도 크게 다쳤어요.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가장 많은 일을 배운 곳이었어요. 이어서 로바다야끼로 갔고, 거기선 텐동을 비롯한 각종 돈부리를 배웠어요. 그렇게 해서 총 세 군데 일식점을 다녀가면서 학창 시절 배운 것들을 강화하게 됐어요.

 

 

 

 

그렇게 배우는 동안 권태나 위기 같은 것이 찾아온 적은 없었나요?

5-6년간 미쳐서 출근하면서도 계속 주먹쥐고 다녔어요. 초밥을 잘 만드는 방법을 일 안할 때도 계속 연습했던 거죠. 그러던 어느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저를 피하는 걸 느끼게 됐어요. 냄새 때문이었을 거예요. 씻고 옷 갈아 입어도 일식하는 사람에선 어쩔 수 없이 비린내가 나요. 한 번은 몹시 지친 날 집에 가는 길, 지하철 유리로 비친 저를 보는데 조리사용 모자를 쓰고 있더라고요. 하루에 열세 시간씩 일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일했던 식당마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긴 했지만 그때 일하던 사람들이 다 쪽잠을 잤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무렵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정장입고 출근해서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낮에 커피숍도 가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면접을 봤어요.

 

 

 

 

어떤 직장이었나요?

삼성물산으로 갔어요. 단체급식팀의 일원이 됐죠. 조리사 열 명, 그리고 20-30명의 조리원이 800명 규모의 식단을 준비했어요. 새벽에 나가긴 했지만 하루에 6-7시간만 일하면 됐으니 전에 비해 몸은 가벼웠죠. 그런데 재미가 없었어요. 엄청나게 큰 솥에 된장 한 통을 붓고 조리료를 잔뜩 때려넣고 끓이는 일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싫었어요. 결국 6개월만 채우고 그만뒀어요. 힘들어서 결정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손으로 직접 정성을 담아 만드는 요리가 저한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죠.

 

 

 

 

 


이재규 셰프의 소빠 데 마리코스
조개 육수로 국물을 낸 문어국밥





이재규 셰프의 뽈뽀 가예고
문어와 감자를 함께 즐기는 새로운 방법




 
△ 이재규 셰프의 레체 프리타 
우유와 계란으로 만드는 스페인 스낵
 

 




 △ 이재규 셰프의 아보카도 샐러드 

건강하고 든든한 샐러드

 

  

 

 

그만두고 나서는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가로수길 와인점에 면접을 보게 됐어요. 엄청나게 크고 여유로운 곳이었어요. 월세가 천만원 단위인 데다 3만원짜리 재떨이, 5만원짜리 작은 접시를 쓰는 그런 곳이었으니까요. 면접을 보러 간 날 냉장고에 있는 음식 꺼내서 알아서 만들어보라 주문하길래 일단 냉장고를 열었죠. 그동안 보던 식재료랑 달랐어요. 딸기, 말린 토마토, 치즈, 올리브 같은 게 있었거든요. 처음 보는 이상한 햄도 있었고요. 즉흥적으로 일식을 했어요. 재료만 달랐지 결국 늘 하던 대로 한 건데요, 간장와 식초 베이스로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사장님이 먹고나서는 내일부터 출근하라 했어요. 테스트를 통과했던 셈이죠. 그리고 거기서 일하면서부터 일식과 멀어졌어요.

 

 

 

 

신사동에선 어떤 음식을 주로 했나요?

필요한 거 다 사줄테니까 스페인 요리를 해보라 했어요. 각종 원서가 왔고, 사장님이 그걸 번역해주면 저는 그대로 요리를 만들었죠. 그때 처음으로 하몽을 알게 됐는데 너무 짜고 비려서 못 먹을 재료라 생각했지만 빵이랑 올리브랑 같이 먹으니까 다르더라고요. 지중해 음식에 완전 무지했기 때문에 올리브에 씨가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일하면서 올리브도 종류별로 쓰고 그랬죠. 올리브유와 식초 또한 종류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사장이 250만원짜리 하몽을 해외에서 주문하고 그랬어요. 당시만 해도 굉장히 귀한 식재료였으니까요. 와인과 샴페인도 엄청 먹었어요. 그러면서 스페인 음식에 눈을 뜨게 됐죠. 하지만 오래 못 갔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스페인 음식점을 차릴 생각을 했을 만큼 몰입했어요. 당시 사장이랑 저랑 같이 투자해서 한남동에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이 남자친구한테 사기를 당했어요. 덩달아 제 투자금도 같이 날아갔죠. 일주일동안 밥을 안 먹었어요. 물만 먹어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는데, 부모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형도 있다. 가족 모두가 다 같이 벌면 날린 돈 금방 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하기 시작했어요. 홍대로 왔고, 이자카야로 갔죠. 새로운 일도 시작했어요. 일하는 짬짬이 다른 레스토랑을 열 수 있게끔 컨설팅 업무가 시작된 것이죠. 메뉴 및 공간을 구성해주는 일이었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인연을 얻게 됐는데 대부분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컨설팅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지 않나요? 스스로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

홍대 있다가 이태원의 멕시코 타코로 옮기게 됐는데, 막 멕시코 요리가 뜨기 시작한 때라 장사도 잘 됐고 저도 즐거웠어요. 하루에 아보카도 몇 박스씩 쓰던 시절이었거든요. 거기 투입돼서 또 새로운 걸 배웠어요. 향신료를 그때 처음 다루게 됐는데, 한 번도 안 해봤던 건데 배합하는 게 재미있었고 맛도 잘 나왔어요. 그러다보니 일이 너무 바빠졌죠. 근무일도 조정이 잘 안 됐고요. 사장과 트러블이 생겼고, 그때부터 주변에서 저한테 던진 말들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왜 너는 너 가게 안해? 이렇게들 묻곤 했죠. 결국 나와서 제 식당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시내를 열었군요. 멕시코 및 스페인 요리를 하고 있죠? 일식에 투자한 시간이 꽤 길었는데 내려놓기 아깝지 않았나요?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죠. 메뉴가 40개쯤 됐으니까요. 처음엔 일본요리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는 사이에 일본요리 문화도 바뀌었죠. 몇 시간씩 졸여서 소스 만들고 했는데 이제는 좋은 제품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게 정성을 들여도 별 경쟁력이 안 생기더라고요. 뭔가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내 근처에 일식집 몇 개가 있는데, 각 사장님들과 이제는 친구가 돼서 가끔 재미삼아서 해주고 그래요. 아직까지 죽지 않았는지 그래도 좀 한다는 소릴 들어요(웃음). 

2년에 걸쳐서 메뉴를 계속 수정하고 줄여왔어요. 처음엔 멕시코 요리와 스페인 요리가 한두 개 정도였는데, 색깔을 좀 더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내도 많이 부추겼어요. 스페인 요리 잘하니까 거게 주력해보라 했죠. 감바스 알 아히요 같은 스페인 요리를 넣었고, 소빠 데 뽈뽀(Sopa de polvo) 같은 포르투갈식 요리도 넣었어요. 조개육수 자박하게 끓여서 만드는 문어국밥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이제는 스스로 모든 걸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여기서 오는 즐거움과 부담이 각각 명확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힘든 것부터 얘기하자면요, 일단 사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주는 부담이 있어요. 위치가 별로 안 좋아요. 그냥 제가 하는 요리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구했는데, 그래도 홍대라서 매년 일정한 금액씩 따박따박 월세가 올라요. 금전적으로 힘들죠. 가족이 생긴 뒤부터는 늘 내년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니까요. 

좋은 걸 말하자면, 음식이 제 것이 되었다는 거예요. 예전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게 식당에 대한 평판이 됐을 뿐이지만 이제는 음식에 대한 반응이 저한테 바로 와요. 식당의 성과가 아니라 제 성과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기회를 얻었어요. 원파인디너도 만났고요.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고 새로운 미래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걱정하고 의심하면서 긴 시간을 보내왔지만 점점 손님이 많이 와요. 주말엔 너무 바빠요.

 

 

 

 


  


  

△ 이재규 셰프가 선택한 식재료들

 

 

 

 

  

 

△ 이재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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