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팔리 프라빈

한때는 IT 분야 컨설턴트로 활약했습니다. 결혼한 뒤 배우자의 근무지를 따라 세계 각국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을 중단하게 됐지만, 대신 다양한 지역에서 요리 경험을 쌓게 됐습니다. 영국에서 코르동블루를 졸업한 뒤 필리핀에 머물던 시절 데모 셰프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언어 : 영어

“요리는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라 생각해요”

디팔리 프라빈

 

 

 

디팔리 프라빈 씨가 첫 촬영 차 원파인디너를 방문한 날, 모든 스태프는 그녀의 장비에 놀랐습니다. 다양한 식재료는 물론 작은 티스푼과 소스 용기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준비해 온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디팔리 씨는 그 수많은 도구와 재료들을 가지고 필리핀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는데요, 이전까지 IT 분야에 종사해왔지만 국제 기업 소속 배우자와 함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요리라는 전문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합니다. 인도 북부 고라크푸르 출신의 디팔리 씨는 영국 꼬르동블루에서 컬리너리 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에서는 호텔에서 일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그녀에게 요리의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 것 같습니다. 

 

 

△ 디팔리 프라빈의 인도식 만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뱃 속에 둘째가 있죠?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조금 두렵지는 않나요?

전혀요. 친구가 소개한 반포 어느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의사랑 의사소통도 잘 되고 있어요. 친구가 설명하기를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의사래요. 

 

 

 

 

아이 말고 요새 다른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인지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요. 일단 NBA를 생각하고 있어요. 세일즈와 마케팅 말고 인사관리(HR, Human Resources) 쪽으로요. HR은 힘든 영역일 수 있지만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요. 한편으로는 요리를 계속 배우고 싶어 숙명여대 꼬르동블루를 생각했지만 저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워요. 언어 때문이예요. 모든 꼬르동블루 수업은 불어로, 그리고 현지 통역으로 진행되는데 저는 한국어를 못 하거든요. 저는 영국에 있던 시절 꼬르동블루 단기 과정을 밟았고, 그때도 불어와 영어로 수업을 들었어요. 

 

 

 

 

잠깐 한국 생활 이야기 들어볼까요. 먼저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만족부터 시작해볼까요.

몇 해 전 배우자 근무지를 따라 한국에 왔어요. 이전까지는 미국, 영국, 필리핀, 태국에 있었고요. 늘 그래왔듯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인데요,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해요. 일례로 마트에서 제가 헤매고 있을 때면 누군가 다가와 잠깐 기다리라 해요. 그리고는 영어 가능한 사람을 데려와 저를 도와주곤 해요. 순두부찌개부터 닭볶음탕까지 한국 음식도 좋아하게 됐어요. 속초로 여행갔다가 먹었던 닭강정은 제가 먹었던 치킨 요리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아요. 외국인들은 한국의 매운 음식을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저는 인도 사람이라 전혀 문제가 없죠. 첫째 아이 ‘슈리’가 낯선 생활에 꾸준히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예요.

 

 

 

 

반대로 한국 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힘든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문제가 되는 건 언어예요. 아무래도 언어가 부족하다보니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제한이 있고, 네이버 검색조차 할 수 없으니 고급 정보를 얻는 일에도 한계가 있죠. 이게 가장 아쉬워요. 주어진 환경을 제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제가 여태 경험한 나라 가운데 한국 만큼 인터넷이 빠른 곳은 없었어요. 차 안에서 화상 채팅을 하면서 한 번도 끊긴 일이 없었거든요. 인터넷은 물론 난방과 비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인프라에 만족하고 있어요. 

 

 

 

 

다음엔 어디로 갈지 혹시 결정됐나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배우자는 국제 기업 소속이라 언제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유럽은 아니길 바라고 있어요. 유럽은 거의 모든 상점이 여섯 시면 문을 닫아요. 저녁이면 옆집 소음에도 민감해지는데, 밤 늦게 파티를 열고 영화를 즐기는 인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죠. 스위스에서는 재활용 분류를 제대로 안 하면 우유병 바코드를 찍어 어디서 버린 건지를 찾아내요. 물론 속한 곳의 규범을 따르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라면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죠.

 

 

 

△ 디팔리 프라빈의 버터치킨
△ 디팔리 프라빈의 시금치 커리

 

 

 

 

 

네팔과 국경을 두고 있는 인도 북부 고라크푸르Gorakhpur가 고향이라 말씀하셨죠. 조금 낯선 이름인데, 어떤 지역인지 궁금하네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예요. 인도 공군 비행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네팔과 가까워 두 시간이면 가는데요, 어릴 적엔 자주 드나들었어요.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어요. 초콜릿과 사탕이 먹고 싶어서 갔어요. 네팔은 중국과 가깝고, 그래서 인도에서 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수입품이 많거든요. 조금 더 큰 뒤에는 청바지를 사러 갔어요. 간식 말고도 여러 가지 수입품이 많아서 쇼핑하기 좋았거든요.

 

 

 

 

그 시절에 품었던 꿈이 있나요. 

어린 날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놀기만 했어요. 저는 막내였고, 그리고 가깝게 교류하는 친척을 통틀어 저랑 언니만 여자였던 까닭에 행복하게도 여성을 많이 존중하는 가풍에서 성장해왔어요. 그래서였을까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입을 앞두고 혼자 약간 초조해졌어요. 그 무렵 실리콘밸리가 부상하기 시작했는데, 그쪽 분야로 뛰어 들어볼까 싶어 약간 준비한 뒤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진대회를 나갔는데 우승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로가 결정됐죠. IT 분야로 갔어요.

 

 

 

 

그리고 성장한 뒤 고향을 벗어나 이력을 쌓았죠. IT 분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였는지 궁금하네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미국 보스턴으로 갔어요. 컨설팅 그룹에서 인턴십을 했고요. 그 다음에는 BOA(Bank of America)로 가서 은행 내부 시스템을 컨설팅하고 설계하는 일을 2년 동안 했어요. 태국에서는 웹 개발자로, 그리고 관련 분야 교육을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너로 일했죠. 첫째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인도로 돌아갔고, 짬짬이 프리랜서로 웹 관련 교육을 계속 했고요. 입사를 앞둔 친구들한테 이런저런 기술을 가르쳐주는 일이었어요. 다음엔 필리핀으로 갔는데 워킹 비자를 못 받았어요. 그때 요리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좀 더 실력을 다지고 싶어 영국으로 가 꼬르동블루 수업을 들었죠. 그땐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계속 영국과 필리핀을 왔다갔다 했어요. 아홉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1-2주 수업 듣고 돌아온 뒤 다시 떠나는 일과의 연속이었어요.

 

 

 

 

꼬르동블루 영국 과정을 이수한 뒤에 요리와 관련한 어떤 일을 하게 됐나요?

‘마스터셰프 필리핀’에 출연한 어느 심사위원이 마닐라에서 운영하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어요. 거기서 6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으며 일했어요. 인턴과 다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워킹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가 없었죠. 대신 다른 일을 했어요. 데모셰프, 즉 시연을 위주로 하는 셰프로 일하면서 다양한 쿠킹쇼를 진행했어요.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죠. 필리핀은 아직 파인다이닝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은 상태고, 그걸 구축해나가는 단계에 있어요. 그러다보니 여러 실험적인 일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한계를 느꼈을 텐데, 그래도 요리와 관련된 일을 했죠. 그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호텔에 들어갔어요. 돈 안 받고 일했어요. 명확한 직무가 생겨야 급여도 받게 되는데, 거긴 인도 요리가 없고 따라서 인도 요리사를 고용할 이유가 없었죠. 호텔 주방은 계급이 명확한 곳이라 맨 아래에서부터 시작하면 시간이 좀 걸려도 별 문제 없이 일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저는 요리를 어느 정도 경험한 사람이라 호텔에서도 그렇게 대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요리 참여자’라는 역할을 줬어요. 6개월 동안 참여자로 일했던 경험 가운데, 인도에서 고위 관계자 200여 명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공식적으로 직원이 아니니 누가 요리를 준비했는지 호텔측은 노출할 수 없었지만, 인도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제가 헤드셰프로 주도했던 이벤트였죠. 


 

 

 

그런데 디팔리 씨가 워킹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제대로 발급받고자 한다면 왜 고용주가 이 외국인을 왜 필요로 하는지 서류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해요. IT 분야라면 ‘이 외국인만 이 특정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 고용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일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요리 쪽에서는 ‘이 사람만 할 수 있는 특정한 요리 기술이 있다’를 증명하기 어렵죠. 

 

 

 

 

결국 디팔리 씨는 IT와 요리라는 상이한 문화를 두루 경험한 셈인데요, 여기서 잠깐 IT 강국 인도 문화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지네요. 한국에서 IT 업종은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또 다른 IT 강국 인도의 상황은 어떤가요?

인도에는 엄청나게 많은 공대가 있고, 학교에서나 사회에 나와서나 성비는 반반이예요. 그런데 컴퓨터 사이언스, 컴퓨터 엔지니어링, 텔레 커뮤니케이션 분야에는 여성이 더 많아요. 이 모든 분야는 코딩 위주로 운영돼요.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 분야고, 여러 공학 영역 가운데 코딩만큼은 훨씬 여성적인 기술이라 인도인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어요. 한편 요리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고된 육체노동이 따르니까요.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건 하루에 쌀가마 20kg을 들고 옮겨야 하는 일이예요. 휴일과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고요. 가사노동과 육아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문화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여성은 프로 요리사로 일하기 어렵죠.

 

 

 

 

일을 열망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 지속적으로 집중하기 어렵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살짝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호텔 건설과 관련한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음식을 굉장히 잘 하고요. 속도도 빠른 데다 맛도 좋아요. 부모님의 두 가지 특징을 엮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 윗 세대부터 내려오는 음식이 있고, 이젠 그걸 제가 하고 있죠. 그러니 음식과 관련해 케이터링 비즈니스를 하거나 수출 관련 사업을 언젠가는 해 보고 싶어요.  

 

 

 


△ 디팔리 프라빈의 사모사
△ 디팔리 프라빈의 파파덤

 

 

 

 

 

부모님 이야기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먹었던 음식 이야기도 같이 들어보고 싶네요.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어요. 빨랐고, 특히 매운 음식을 잘 만들었어요. 가끔 엄마가 만든 염소커리가 생각나요. 이제는 제가 똑같이 맛을 흉내낼 수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만들던 토마토와 생선을 넣고 끓인 커리도 생각나고요. 그건 머스터드 씨드, 카다몸, 마늘이 들어가는 커리예요. 다진 고기랑 콩으로 만드는 요리도 있었어요. 파라타 같은 밀전병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었어요. 그리고 밀전병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난부터 로띠까지, 파라타부터 푸리까지 인도에는 주식으로 먹는 빵이 엄청 많고, 그걸 늘 집에서 먹어 왔어요. 전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자랐어요. 집에 소 한 마리가 있었고, 젖을 짜면 나오는 우유로 요거트부터 버터와 치즈에 이르기까지 그걸 어머니가 직접 다 만드셨거든요. 각종 커리에 들어가는 마살라도 공산품을 쓰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어머니가 다 만들었어요. 

 

 

 

 

가족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겠네요. 배운 과정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동안 집에서 뭘 만들어본 적 없어요. 어머니가 다 했고, 저는 가끔 차만 우리는 정도였죠. 스물두 살에 결혼한 뒤부터 요리를 하게 됐는데 제게는 어머니가 구글이었어요. 하다가 막힐 때면 늘 전화했죠. 당시에 미국에 있었는데, 인도와 시차가 열두 시간이었어요. 제가 요리했던 시간은 인도에선 새벽이라 나중엔 제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저녁 요리를 준비했고, 시간당 수당을 받는 일이라 그런 통화를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곤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졌고, 나중에는 제가 만든 음식을 어머니가 먹고는 깜짝 놀랐어요. 

 

 

 

 

결혼, 그러니까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서 음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도 사람들은 많이 먹어요. 아침, 점심, 간식, 그리고 저녁을 먹어요. 그리고 인도에서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가 요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집에서 잘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데요, 결혼한 여성 또한 사랑받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저는 좀 달랐어요. 배우자가 밖에서 먹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요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그냥 제가 먹고 싶었어요. 아무리 인도 레스토랑이 많다 해도 제대로 된 인도식 집밥을 미국에서 먹긴 어려우니까요. 그러다보니 요리는 수영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이에게도 조금씩 가르칠 필요를 느꼈어요. 첫째 아이 슈리가 지금 여섯 살인데, 샌드위치는 만들 줄 알아요. 

 

 

 

 

요리에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촬영 차 사무실에 왔을 때 압력솥을 비롯해 밀대, 식기, 스푼, 그리고 다양한 식재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도산 제품을 가져오셨어요. 이래저래 외국 생활이 길었는데, 그 모든 것을 챙겨 이동하는 일이 번거롭지는 않았나요?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은 직업의식의 일환인가요?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것도 귀찮지 않아요. 누군가 메이크업에 몰입한다면 아홉 가지 단계를 거쳐 다양한 도구와 화장품을 쓰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요리로 돌아오면, 각 음식에 맞는 도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도산 압력솥을 써야 밥할 때 그 맛이 나오고, 밥도 타지 않아요. 웨지감자를 만드는 도구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걸 써야 바삭바삭한 음식이 완성되거든요. 밀대만 봐도 그래요.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인도에는 수많은 플랫 브래드가 있고, 롤러의 크기나 모양이 적당한 크기와 맛을 결정해요. 저한테는 세 개 있는데, 어머니는 더 많이 갖고 있죠. 그래야 더 맛있고 더 풍성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래저래 많이 흘리고 다녀서 잃어버린 게 좀 있지만, 엄마는 그 많은 롤러를 여러 여성들과 함께 나누면서 음식을 만들곤 했어요.

 

 

 

 

다른 아시아 문화와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또한 많은 여성들이 요리를 비롯한 가사노동을 맡습니다.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때때로 힘든 노동이기도 합니다. 이에 관한 디팔리 씨의 의견이 궁금하네요.

저도 전업주부였던 시간이 있었고 일에 집중하던 때도 있었지만 제 경우보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돈을 벌지 않으면 잉크가 다 떨어진 펜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데, 바깥일로 바빴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늘 집에만 머물러 있었죠. 엄마는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남다른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죠. 휴일 없이 가족을 돌본다는 건 돈을 버는 것보다 위대한 일이예요. 저는 그런 가치를 일깨워 준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

 

 

 

 

△ 디팔리 프라빈이 선택한 식재료

 

 

△ 디팔리 프라빈의 조리과정
△ 디팔리 프라빈의 조리과정

 

디팔리 프라빈 호스트의 디너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