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영

한때는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이력을 쌓아왔지만 만 서른에 먼 길을 떠났습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요리 학교(Escuela de Cocina Luis Irízar)에서 2년을 공부했고, 현재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상차림 마하키친(Majakitche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깥 일이 피곤한 날일수록 집에 와서 더 요리에 집중한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언어 :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요리를 하면 잡념이 사라져요”

신소영

 

 

며칠 전 신소영 씨와 장을 보러 같이 나갔습니다. 사과 두 개를 집어들길래 샐러드 재료인지를 물었더니 볶아서 스튜에 쓰면 맛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거긴 사과가 많이 나거든요. 토마토 대용으로 사과를 쓰는 요리가 많아요.” 경험한 게 다르니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소영 씨가 특별한 사과 활용법을 배운 곳은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의 한 요리학교(Escuela de Cocina Luis Irízar)인데요, 2년 간 공부하고 돌아온 뒤 서울의 한 스페인 식당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아직 셰프라는 말을 부끄러워합니다.

 

원파인디너와 함께 첫 레시피 촬영을 진행한 날, 소영 씨는 방풍나물을 한아름 가져왔습니다. 스페인 요리를 준비할 그녀의 손에 생각지 못한 식재료가 들려 있어 잠깐 의아했는데, 빠에야와 감바스 알 아히요에 들어갈 예정이라 했습니다. “원래는 이탈리안 파슬리를 쓰는데요, 여기선 좀 비싸요. 방풍나물이랑 향이 비슷하니 이걸로 써도 괜찮아요.” 소영 씨는 손에 잡히는 친근한 식재료로 곧 이국의 맛을 완성했습니다. 만 서른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스페인으로 간 뒤, 그녀는 좀 더 융통성 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 호스트 신소영의 스페인 식탁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지역에서 2년간 머물렀다고 하셨죠. 낯설게 느껴지는 지명인데요, 지역에 대한 소개부터 먼저 부탁할게요.

스페인 북부 자치구 바스크 지방의 한 도시인데요, 크기는 서울 면적의 1/10 정도예요. 인구는 20만이고요. 큰 도시는 아니지만 미식의 성지로 통할 만큼 고급 식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해요. 미슐랭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곳이거든요. 매년 국제 규모의 미식 축제가 열리는데요, 평균적으로 관람객 만 명 가량이 찾아와요. 세계 정상의 셰프들이 선보이는 전통과 혁신의 요리를 구경하러요.

날씨는 온화한 편이고, 그래서 그랬는지 먼 옛날부터 왕족의 휴양지로 자리를 잡았대요. 지금도 관광객이 많아요. 주말 아침이면 크로아상을 카페오레에 적셔 먹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요, 대부분 놀러 온 프랑스 사람들이예요. 산 세바스티안은 프랑스 접경지대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음식에도 프랑스와 스페인 양국의 문화가 고루 섞여 있어요. 여느 스페인 요리처럼 올리브유가 많이 쓰이지만 버터가 들어간 프랑스 스타일의 요리도 많아요.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은 느긋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 식생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사이에 커피와 토스트를 먹어요. 그리고 열 시쯤 간식을 먹어요. ‘메리엔다(merienda)’라 불리는 문화예요. 그리고 저녁을 늦게 먹어요. 아홉 시에서 열 시쯤 가볍게 와인에 안주 몇 개 정도로 간단하게 끝내요. 

두 시부터 점심식사가 시작되는데요, 점심을 가장 중요한 식사로 여기고 많이 먹어요. 전채부터 시작해 본식에서 후식까지 점심에 다 먹거든요. 세 시에 와서 다섯 시 여섯 시까지 있다가 가는 사람도 종종 봐요. 그래도 식당에 일찍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관광객만 그래요. 이제는 전통이 좀 없어지긴 했지만 예전에는 한 시간 넘게 점심을 먹고 시에스타를 즐겼대요. 2003년 스페인에서 잠깐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어요. 점심시간이 두 시부터 네 시까지였고, 퇴근은 일곱 시쯤 했어요. 

그리고 외식은 주로 어른들의 이야기예요. 스페인도 경제가 어려워졌거든요. 부동산 버블도 있고, 청년인구의 실업률이 높아요. 부가 중장년층에 집중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외식을 잘 안 해요. 한국의 청년들이 편의점을 전전하는 것처럼 스페인의 젊은 친구들도 피자 돌려먹고 그래요.

 

 

 

그럼 이제 학교 다니던 시절로 가볼게요. 당시의 일과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학년 때는 아침마다 실습실에 갔어요. 식재료 준비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양파 까고 마늘 까고 그랬죠. 거긴 한국과 다르게 깐마늘이 없어서 손으로 다 일일이 까야 하거든요. 징그러운 것도 많이 봤어요. 돼지 귀가 들어오면 속을 파내고 닦아야 했어요. 불순물도 많고 털도 많으니 만지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죠. 

그리고 유럽엔 사냥철이 있어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긴 한데, 동물의 번식기를 제외하고 EU가 법적으로 사냥을 허용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유럽에선 채집 및 수렵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연구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순록 같은 야생 동물을 잡고 야채를 직접 캐서 요리하는 문화가 있는데, 특히 노르딕 퀴진이 여기에 강해요. 그런 사냥철이 찾아오면 생전 못 보던 동물을 봐요. 피투성이가 된 새가 주방에 들어오기도 했죠.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깃털을 뽑아봤네요. 

2학년이 되면 조금 일찍 직원들과 같이 밥을 만들어 먹고 두 시부터 시작되는 점심 영업을 준비하는데요, 주문받은 요리를 내보내는 것보다 직원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어요.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 자국의 이색적인 요리가 나오기도 하고, 셰프들한테 자신을 드러내는 기회라 생각해서 다들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준비하거든요. 먹을 만하지만 손님한테 나가지는 못하는 식재료를 활용해서 끼니를 챙기는데, 그렇게 남김 없이 재료를 쓰는 것도 바람직하게 느껴졌어요.

 

 

 

수업 내용도 궁금하네요.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배웠는지를 듣고 싶어요.

한 학기가 3개월인데요, 총 일곱 학기를 보냈어요. 학기 시작 3개월 전에 교과서가 나와요. 모든 책에는 30가지 요리가 소개되어 있는데요, 매번 수록되는 음식이 달라져요. 변화하는 미식 트렌드를 반영하기도 하고, 학교를 다녀간 학생을 통해 기존의 책에서 대체되는 요리가 생기기도 해요. 학교 수업의 커리큘럼 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세계 요리 시간이 있는데, 학생 자신이 자국의 음식을 주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좋은 레시피가 나오면 책에 새로 실려요.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외국인 학생들 대부분은 학과 과정이 끝나면 자국으로 돌아가요. 스페인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조리법을 배우지만 결국 스페인에서 벗어나서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 그래서 학교는 어디서든 배운 것을 응용하고 학교와 다른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요. 학생들은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배워요. 그게 환경 차원에서도 좋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니까요. 굳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면서 저 먼 곳에서 식재료를 가져와 요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우 푸드 운동 이후로 먹거리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성장한 것 같아요.

학교에선 영상 교육을 많이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는 건데요, 일례로 우리가 싼 값에 먹는 민물고기 틸라피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줘요. 카메라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양식장으로 가요. 그리고 그런 대규모 양식장이 생태계를 파괴할 뿐더러 불합리한 노동문제를 야기하고, 우리가 필레와 피시 앤 칩스를 즐기는 동안 수출국들은 생선을 말리면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들로 가득찬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내용을 이야기하죠. 학교는 그런 영상을 보여줄 뿐 생각이나 입장을 강요하진 않아요. 다만 음식을 배우고 만들려는 사람한테 그런 윤리적 의식을 일깨워주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할 기회를 계속 주는 것이죠. 

 

 

 

중요한 태도를 배웠네요. 한편 요리의 이론과 철학만큼 중요한 건 실습이었을 것 같은데요, 실습 과정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다니던 학교가 사립학교였어요. 공립학교는 스페인 노동법상 현장실습을 1년에 3개월 이상 나갈 수 없거든요. 하지만 사립학교는 자유롭죠. 2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자 마자 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학교의 목표였거든요. 학교 출신들이 근처에 식당을 개업하는 경우가 많아 다 학교와 연계가 있어요. 학기 중에 거의 매일 거기로 실습을 나갔어요.

셰프의 개성도 제각각이라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다 달라요. 코스에 주력하는 경우도 있고, 그날그날 음식이 계속 바뀌는 대중적인 식당도 있었고, 호텔도 있었죠. 배우는 것도 다 달랐어요. 똑같은 요리를 계속 반복하면서 빨리 만드는 동시에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스킬을 배우기도 하고, 호텔에 가서는 뷔페와 룸서비스 메뉴를 같이 익히기도 하고요. 1학년 시절엔 제비뽑기로 여러 레스토랑을 경험하게 되고, 2학년 말이 되면 선택권이 주어져요. 그때는 적성을 따라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죠.

실습실을 드나드는 동안 조리복 다섯 개를 돌려 입었어요. 옷에 오물이나 주름이 있으면 실습실에 못 들어갔으니까요. 초콜릿 디저트를 만든 날이면 초콜릿에 기름까지 다 튀어 난리가 나죠. 옥시크린으로 다 빨고 삶아서 얼룩을 다 지워야 했어요. 귀찮은 날도 많았어요. 한국에 있는 동안 다림질 한 번 제대로 안 해봤으니까요. 모자도 꼭 써야 해요. 그게 참 싫었어요. 모자를 쓰면 좀 바보 같아 보이는 건 둘째치고 일하다 보면 땀이 많이 나니까 머리가 뜨겁고 가려워지거든요. 이마에 여드름이 돋고요. 그런데 학교의 그런 엄격한 복장 규정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지 않았나 싶어요. 

 

 

 

수업을 같이 듣던 학생들이 궁금하네요. 어떤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는데, 중남미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어요. 바스크 출신은 딱 세 명이었고, 스페인은 꽤 넓고 지역색이 강한 나라라 유학하듯 바스크 지방의 음식 문화를 배우러 찾아온 스페인 전역의 친구들도 좀 있었어요. 동양인은 적었어요. 중국인 한 명, 일본인 한 명, 그리고 한국인 두 명이 전부였어요.

일본 사람들은 예전에 많이 배워갔대요. 한국은 스페인 음식점이라 해도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단계인데, 일본은 이미 세계 음식이 오래 전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도쿄에 이미 스페인 거리가 있대요. 바스크 스타일, 안달루시아 스타일, 이렇게 명확한 로컬 음식 전문점을 열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진으로 확인한 게 전부라 맛은 잘 모르지만 생김새를 보면 현지 음식이랑 거의 같게 만드는 일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소영 씨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한국의 스페인 음식점에서 일했죠. 학교에서 배운 것과 무엇이 다른지 듣고 싶네요. 많은 한계를 만나는 일이기도, 새로운 적응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스페인은 지역마다 자치가 잘 되어 있어서 지역 문화가 잘 살아 있어요. 요리도 마찬가지라 다양하고 풍요롭죠. 하지만 지금 식당에서 만드는 건 지역 특성 메뉴가 아니라 빠에야, 감바스 알 아히요, 이베리코 하몽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스페인의 상징적인 음식들이예요. 

재료도 한국인 취향에 좀 더 근접해있어요. 요새 연어가 많이 풀려서 연어를 많이 써요. 유럽 사람들은 알래스카산 연어가 항생제를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이제는 기피하거든요. 거기 수요가 엄청 줄어서 다른 시장에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어요. 덕분에 식당에서도 연어 요리를 많이 했어요.

식당의 셰프가 6년간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스페인 사람인데요, 그래서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았나 생각해요. 스페인 용어와 스페인 사람들이 꽉 찬 주방에서 돌아와 과도기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들어간 곳이니까요. 식당이 문을 열기 전부터 참여했는데, 덕분에 시장에서 기물도 같이 사고 인테리어도 같이 하면서 주방이라는 공간을 구성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배웠어요.

 

 

 

그런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늦게 시작한 공부이니 갈등도 많았을 것 같고요.

학교에 나이 제한이 있어요. 만 서른까지인데요, 지원할 때 서른이었고 입학할 때는 넘었는데 다행히 받아줬어요. 그렇게 턱걸이로 갔어요. 학교 인사와 인맥이 있어서 특채로 입학했던 서른여덟 살의 어느 동기를 제외하면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았거든요. 

업무 경력이 적당히 쌓여 서른 쯤 되면 사회 생활에 딱 최적화된 태도나 성격 같은 것이 형성되잖아요? 그런 상태로 가서 열여덟 살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청소하고 요리를 하게 됐죠.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배우고 일하는 천방지축 십대를 만나니까 저도 모르게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몹쓸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좀 꼰대 같아지는 것이죠. 어쩔 수 없는 동양인인가봐요. 하하.

함께 학교에 있던 친구와 동료들은 저를 ‘신’이라고 불렀어요. ‘예’를 뜻하는 ‘si’와 발음이 비슷해서 ‘씨’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씨’는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거든요. 스페인어를 쓰는 청년들 대부분은 누군가 말을 해도 꼬박꼬박 ‘씨’ ‘씨’ 하지 않아요. 저는 대답만 잘 했던 것 같아요. 하하. 대학시절 스페인어를 배웠고 스페인에서 일도 해봤지만 새로운 현장에서 의사소통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원래 긴장을 잘 하는 데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스페인으로 생각해서 말하려면 또 힘들죠. 주방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내고 화를 내면 냈지 외국인이라고 제대로 설명해주는 일이 없거든요.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주방의 언어를 익힌 끝에 또 스페인 식당에 들어왔더니 주방에 들어가면 딱 스페인 모드가 되더라고요. 지금 당장 큰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 다른 환경을 만날 테니 차차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이었나 의심한 적은 없었나요?

왜 없겠어요. 마음먹고 간 순간부터 계속 했어요. 떠나기 전부터 계속 반신반의했고 사실 지금까지도 왜 그랬을까 의문스러워질 때가 있어요. 머무르던 곳이 바닷가였는데, 맨날 바다를 보면서 나는 뭘 하려고 여기 왔는지를 생각했어요. 내가 과연 소질이 있나,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다고 난리칠 땐 언제고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맨날 그랬어요. 친구가 분명 갔어야 할 이유를 곧 찾게 될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돈도 문제이긴 했지만 막상 가서 보니까 돈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이걸로 길게 일할 걸 생각하고 갔고, 돈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생각할 만한 강력한 동기가 됐거든요. 실습실에서 굴 먹고 집단 노로 바이러스가 와서 다음날 수업 중간에 돌아온 게 전부였을 만큼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어요. 수업료와 월세를 합치면 한 달에 최소 130만원 가량을 써야 하는데, 학교와 실습실에서 매번 끼니를 해결했으니 먹는 덴 돈을 안 썼어요. 주말에 식당에서 일하면서 용돈도 조금씩 벌었고, 학기 마지막 3개월간의 실습은 식당에 상주하는 셰프들과 똑같이 일하고 받는 방식이라 생활비 문제에서 자유로워졌죠. 

대학 시절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어학 연수를 했고 스페인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도 있었어요. 그땐 새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취해 마냥 즐거웠는데, 요리는 결혼 뒤에 찾아온 결심이었고 그래서 느끼는 게 달라졌어요. 내가 원래 갖고 있던 관계들이나 익숙한 문화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닫게 됐으니까요. 남편 덕분에 갈 수 있었거든요. 한참 요리에 대한 열망과 걱정과 싸우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아닌 걸 알려고 해도 해봐야 알지 않겠는가, 평생 후회하느니 경험해봐라 말해줘서 갔어요. 

그래도 늘 고민하는 것만큼 최악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 주말마다 식당에서 알바할 기회도 생겼고, 원파인디너도 만나게 된 뒤로는 두려움이 많이 희석되고 있어요.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요리를 계속 하면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 호스트 신소영의 해산물 빠에야 

 

 

 

 ▲ 호스트 신소영의 감바스 알 아히요 

 

 

   

▲ 호스트 신소영의 아로스 데 베르베레초스

 

 

 

 

소영 씨는 대학 시절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나중엔 스페인으로 가서 요리를 배웠죠. 그런데 왜 스페인이었나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처음 인지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요, 중학교 시절 펜팔로 외국인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그 친구가 스페인 사람이었어요. 제가 사진을 보냈더니 연락이 끊겼지만요. 하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외국 생활하는 미래를 막연하게 꿈꿨는데, 남들 안 하는 언어가 좋겠다 싶었고 어쩐지 정열적인 인상에 이끌려 스페인어를 골랐어요. 언어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발음도 쉽고 말 자체도 경쾌하니까요. 남미 전반을 아우르는 서반어권 문화는 전반적으로 소란스럽고 유쾌한 구석이 있어요. 문학을 배우고 건축과 영화 등 예술 분야를 접하면서 애정은 더 깊어졌어요. 물론 피비린내 나는 남미 지배의 끈질긴 역사를 헤아리기 시작하면 생각할 게 많아지지만요.

공부로 시작해 차차 연수로, 또 일로 스페인에 머물 기회가 생기면서 또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아요. 뭔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어요. 마침 제가 마드리드의 어느 구역에 머물렀는데, 이태원과 비슷하게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된 동네였어요. 서브컬처에 관대하고, 여성의 해방이라는 화두에도 항상 열려 있는 지역이기도 했고요. 갤러리, 페스티벌, 디자인 등등 문화적으로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던 환경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결혼했고, 예술경영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짬짬이 공연 기획 관련 일을 했고요. 남편 퇴근이 늦어 그때부터 주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는데요, 단순하게 저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작이었어요. 그러다 유럽에 가게 됐어요. 그때 하던 연구가 유럽의 사회 조사였거든요. 요리에 눈을 뜨니까 가서 먹고 느끼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서점에서 요리책을 잔뜩 사왔고, 집에서 각종 스페인 음식을 계속 만들어보면서 뭔가 좀 아깝다는 생각에 그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혼자 깊게 빠져들게 됐어요.

 

 

 

유학이라는 큰 결심으로 이어졌을 만큼 소영 씨가 찾은 요리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취미로 요리에 집중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씩 이런 걸 느껴봤을 것 같은데요, 정신 노동을 오래 하다 보면 육체적인 활동에 대한 욕구가 생겨요. 몸이 좀 힘들다 해도 단순 반복 작업이 주는 큰 즐거움이 요리에 있어요. 그게 자동명상으로 이어지고요. 물론 나중에 공부하면서 요리에도 빠른 두뇌 회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요. 순서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엄청 쓰면서 빠르게 진행할 일이 많아요.

어쨌든 그렇게 요리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남편과 시부모님 사이에 작은 갈등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걸 푸는 의미로 제가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어요. 이상한 거 다 만들었어요. 잡채도 하고 갈비찜도 하고 두부도 튀기고, 돼지고기도 재어놓고 도미도 통째로 요리하고 그랬죠. 제가 잠을 못 자는 걸 굉장히 못 견디는데요, 그 모든 걸 만들면서 저도 모르게 밤을 새우게 됐는데 전혀 피로를 몰랐어요.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건 내가 유일하게 밤을 새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언제나 음식에 이끌린 사람들을 만날 때면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요. 소영 씨의 어머니는 음식으로 소영 씨한테 어떤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집에선 대체로 평범하게 먹어왔어요.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가풍이라 나물과 청국장 같은 걸 많이 먹었어요. 그런데 가끔 별식을 준비하셨어요. 돈까스 같은 경양식이었는데요, 버터에 밀가루를 섞어 루를 만든 뒤 브라운 소스를 완성하던 기억이 나네요. 돌이켜보니 엄마는 한정된 엄마는 한정된 환경에서 가족이 다양한 맛을 경험하도록 많이 애쓰셨던 것 같아요. 

저는 버터맛을 좋아해요. 그리고 서양 요리에는 점도나 농도를 잡을 때 버터를 많이 쓰죠. 귀찮아서 대충 물에 전분 개서 할 때도 많지만요.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버터를 써서 루를 만들 때면 엄마의 맛이 떠올라요. 그 느낌을 살리는 방식으로 저도 요리를 하고 있고요. 

엄마한테 요리하는 방법을 따로 배우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뒤늦게 서양 요리를 시작해 지금까지 배우고 있지만 결국 어릴 적 경험한 엄마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돌이켜보니 엄마의 음식과 제가 배운 요리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엄마의 카레는 늘 끝 무렵에 더 맛있었어요. 오랫동안 바글바글 끓인 엄마의 음식을 늘 사랑했어요. 제가 배우고 익힌 스튜 같은 음식과 다르지 않은 방식이죠.

 

 

 

동생 성하 씨도 요리를 즐긴다고 했지요. 베이킹을 배우고 있기도 하고요. 좀 더 상세하게 듣고 싶어요. 동생은 어떻게 요리의 매력을 발견하고 뛰어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동생은 패션을 공부하고 마케터로 이력을 쌓았는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만드는 요리의 대중성과 시의성을 잘 판단해주는 고마운 친구예요. 프라이빗 디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손님을 상대할 일이 생길 때면 머리부터 예쁘게 묶으라는 필요한 잔소리도 많이 해줘요. 하하. 동생은 성격이 꼼꼼하고 뭐든 예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네일아트도 배웠고 창업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는 음식을 할 때마다 보이는 것보다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반면 동생은 대학 시절부터 베이킹을 했고 집에서도 항상 모양에 신경을 써서 예쁘게 만들었어요.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5년간 유학 생활을 했는데, 그러면서 혼자 뭔가 만들어 먹을 일이 많이 생겼대요. 그러다 제가 요리로 마음을 정한 뒤에는 같이 음식에 대한 이야길 나눌 일이 많아졌고 서로 도울 일도 많이 생겼어요. 나중에는 동생과 함께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해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방향, 어떤 운영을 계획하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아직 멀었어요. 지금은 그저 이름만 정한 단계예요. 이름은 마하 키친(Maja Kitchen), 블로그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스페인어로 마하는 친절하고 성격이 온화한 사람을 뜻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붙인 이름이고요. 스튜디오를 연다면 스페인 음식 위주로 운영할 것 같아요. 어렵거나 다가가기 힘든 요리는 없을 것 같고, 이국적이지만 복잡하지 않은 조리법으로 집에 있는 도구들을 활용한 요리를 같이 나누고 싶어요. 음식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상적인 일이지만, 막연한 꿈만 가지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경험이 좀 더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영씨는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지금도 공연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력이 요리에 분명 크게든 작게든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그런 경력이 지금의 요리에 연결되는 부분이 있나요?

배고프니까 그냥 밥을 먹으러 가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신중하게 식당을 고르기도 하죠. 한 식당을 알게 된 뒤 홈페이지를 방문해 메뉴를 인지하고 예약해서 약속한 날짜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렇게 찾아온 손님은 음식의 맛부터 서비스하는 직원의 태도까지 식당의 모든 것을 경험하게 돼요. 그 자체가 식당의 퍼포먼스이니 티켓을 예약해 무대를 만나는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공연과 식당이 비슷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는 메뉴 선정부터 실제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 주방 업무가 비교적 수월해졌던 것 같아요. 목표를 설정한 뒤 고객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고 비전을 제시하는 뭐 그런 도식화된 사업 모델이 있잖아요? 기획서에 구체적으로 썼던 내용들을 요리에 똑같이 적용하게 된 것이죠. 

 

 

 

소영 씨의 인생에는 분명 여러 가지 유리한 기회와 선택이 있었을 텐데, 요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아직까지 그게 과연 효과적인 소통법인지 잘 모르겠지만, 음식으로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봐요. 말을 잘 못하니까요.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 빠르다는 것도 요리가 주는 큰 강점이예요. 좋든 싫든 반응이 바로 오니까요. 그리고 그간 경험했던 다른 일과 비교해보면요, 요리의 피로도가 훨씬 높아요. 육체를 많이 쓰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요. 일단 생각을 안 하게 만드는 과정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만족도는 더 높아요. 생각을 안 하면서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이루는 일이니까요. 식당에서 유난히 힘들게 일한 날일수록 집에 와서 더 요리를 해요. 영영 못 끊을 것 같아요.

 

 

 

 

 

  

▲ 호스트 신소영

 

 

 

 

 

신소영 호스트의 디너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