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 1 출신으로 조리를 비롯해 강의부터 컨설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음식 전문가입니다. 종갓집에서 나고 자라 집에서 이북의 내림음식을 배우고 익혀왔고, 한국 고유의 맛을 지키려 애쓰는 요리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언어 : 한국어

“집밥에도 품격이 있어요”

박소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1 출신의 박소진 씨에 따르면 북한음식은 이북음식과 다릅니다. 북한음식은 한국전쟁 이후의 음식이고, 이북음식은 북한의 윗세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음식입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까닭은 그녀의 친가와 외가 모두가 이북 출신인 데다 이북음식의 노하우를 가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수받았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눈뜬 이후 한식을 비롯해 중식과 일식을 마스터했고 조리부터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력을 쌓아왔는데요, 그만큼 융통성 있는 요리에 능하지만 한식에 몰입할 때면 전통적인 방식을 추구합니다. 그건 박소진 씨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집안 고유의 맛을 지키고 있는 젊은 요리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대요. 

 

 

한때는 음식과 무관한 일을 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요리에 입문했는지 궁금하네요.

저희 집이 종갓집이라 일찍부터 주방에서 음식을 배우긴 했어요. 대학 시절에는 음악을 전공했고, 첫 직업은 헤어 디자이너였어요. 미용실이 안정된 다음부터는 파티 플래너로 일했는데 미술 및 음악과 연관된 리셉션 파티를 하다 보니 요리에 입문하게 됐어요. 그러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1에 나가게 됐고, 방송 이후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됐고요. 제너시스 BBQ 고문으로도 일했어요. 지금까지도 식당 상호부터 메뉴 개발 등 다양한 컨설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서울에 진출한 과정이기도 한데, 그래도 여전히 청주에 살고 있어요. 이전까지 하던 활동도 다 청주에서 이루어졌고요. 

 

 

프랜차이즈 이력을 말씀하셨는데요, 음식 전문가 입장에서 망설여지는 결정 아니었을까요?

저는 재미가 있어야 일을 해요. 같이 일하게 될 파트너가 맘에 안 들면 안 해요. BBQ와 일할 때도 저는 갑과 을의 관계를 바꿔놨어요. 그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회사에서 내가 필요해서 나를 부르는 건데 회사규정이라면서 이러저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게 맘에 안 들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일하고 싶다고 회장 앞에서 요구했어요. 굳이 거기 안 가도 제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저도 개인 비스트로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입장에서 프랜차이즈라는 이미지가 생기는 게 딱히 좋지 않으니까요. 회사는 규정에 어긋난다고 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였죠. 저는 지금의 나이에 이 정도로 활동하고 있는 제 모습이 좋아요. 그런데 앞으로 저를 믿고 따라주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서는 제가 더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역동적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인맥을 형성해왔는데, 동료 제자 및 후배들과 어떤 방식으로 교감하는지 궁금하네요.

커뮤니티 형태로 일하고 소통하는 걸 즐겨요. 그래서 음식과 무관한 커뮤니티와 연계해 여행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만나는 식재료로 요리를 하기도 해요. 셰프 에이전시를 운영해 퍼포먼스 팀을 만들기도 하고요. 올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감소통이라는 주제의 요리쇼를 기획하고 영상을 제작했어요. 오케스트라한테는 바다가 생각나는 음악 혹은 음식이 생각나는 음악을 들려달라고, 요리사에게는 음악이 떠오르는 음식을 만들어달라 주문했어요. 서로에게 추상적이고 어려운 주제인 만큼 각각 치열하게 연구하게 되거든요. 퇴근 뒤에 혹은 새벽에 한 달간 모여서 연습하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즐거웠어요. 여기 참여한 셰프들은 저랑 걸었던 길이 달라요. 주방에서만 10년 20년 일해왔던 사람들이고, 주방 안에서 요리하기 바빠서 밖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를 몰라요. 여행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을 통해 눈과 귀를 함께 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만들었던 이벤트예요. 

 

 

이색 이벤트인 만큼 기획 초기 단계에선 걱정이 많았을 것 같아요.

많이들 걱정하고 두려워했죠. 하지만 손님 앞에서 요리를 설명하고 박수를 받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대요. 결국 이게 물꼬가 돼서 저한테 다른 제안도 들어왔고요. 하지만 유명한 식당을 설득하긴 좀 어려워요.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고, 셰프들도 유학 마친 뒤에는 유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만 가고 싶어 하고요. 사실 파인 다이닝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어릴 적부터 미각 교육도 되어 있지 않아요. 저는 제가 종갓집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집에서부터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어왔고, 그런 경험이 오늘의 미각을 형성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미각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헤어 디자이너로 일할 때 소년원에서 2년간 봉사 활동을 했는데요, 아이들 얘기를 듣자 하니 6-7살 무렵부터 늘 집에 혼자 있었대요. 저는 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늘 힘들었는데. 그때 뭘 먹었느냐 물어보니 스팸을 수저로 떠먹었대요. 참치랑 라면이 주식이었대요. 그때부터 미각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동 수업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아동 요리 지도자들 대부분이 파프리카 잘라서 꽃 만들고 포도색 송편 만들고 하는데, 저는 여러 가지 식재료를 활용해서 미각과 촉각을 살리는 교육을 했어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에 제안했더니 이런 건 집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한 밥상머리 교육 아니냐고 반문하더라고요. 공익을 추구하는 기관조차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성과를 원하니까요. 아이를 요리 수업에 보내는 엄마들의 조급함은 말할 것도 없죠. “이거 하면 우리 아이도 TV에 나오는 유명한 셰프가 될까요?” 하고 물어봐요. 아이 꿈이 요리사라서 보낸다는데, 근데 아이들의 꿈은 열두 번도 더 바뀌잖아요.

 

 

그렇다면 실제로 가정에서 아이들과 음식으로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요리가 우리 삶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과소평가하고 우습게 여기지만, 삶의 모든 것이 음식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어요. 대화가 단절되는 것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힘도 다 음식이 가지고 있다는 건데요, 일례로 한국은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으니 저녁문화가 없어요. 고등어 굽는 냄새, 김치찌개가 익어가는 냄새 같은 걸 요새 아이들은 잘 몰라요. 집에서 엄마가 해준다고 해도 냄새 때문에 양키 캔들 켜놓고 하는 데다 백화점에선 이미 구워진 생선을 파니까요. 집밥을 제대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가서 먹는 것도 때로는 신중함이 필요해요. 저는 외식도 일종의 교육이라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진짜로 정성이 들어간 좋은 음식을 가족과 같이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요. 그런 데서 중식, 한식, 양식의 식사예절 교육을 가르치기도 하고요. 여행 중에 현지 음식을 많이 접하기도 해요. 

 

 

그런 교육방식의 뿌리가 궁금하네요. 

외가 친가 모두 이북이에요. 저희 집이 종가집인데요, 모든 가족이 북에서 내려와 일가를 이루고 살다가 집안의 음식을 제가 전수받은 거죠. 이북과 북한은 다른 표현이에요.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이북음식이라고 음식점을 차렸지만 전통적인 음식을 한 게 아니에요. 부족한 식재료가 만든 음식들, 이를테면 옥수수죽 같은 걸 팔았죠. 평양냉면이 워낙 유명해서 그걸 북한음식의 모든 것으로 단정하는 경향도 있고요. 전통적인 이북음식은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고랭지라 배추를 많이 쓰고, 최초의 도축장과 우시장이 형성된 곳이 평양인 만큼 고기 음식이 많고 중국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런 내림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를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문화를 식구들 많은 집에서 경험하고 배운 만큼 약간의 사명감 같은 게 있어요. 이제 집안의 실향민 1세대도 다 돌아가셨고, 우리 종가의 내림음식을 알리고 지키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먹어본 사람만 그 기술과 감각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거창하게 이북음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 집안의 내력과 역사만 아니까 그 부분이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고, 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는 중이에요. 오늘날의 요리사가 고민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싶어요.

 

 

박소진 호스트의 디너 제안

  • 현재 디너를 준비중입니다.